[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제재영향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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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질문> 오늘은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북한 경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문성희 박사님,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떻던가요?

문성희: 네, 영향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선 북한이 받고 있는 제재에 대해 간단하게 훑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처음 북한에 대해 제재를 결의한 때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당시는 미사일 개발과는 상관없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북한에 탈퇴 결정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뒤 2006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포동 2호’ 등의 미사일 시험에 대한 제재로 미사일 또는 미사일에 관한 품목, 자재, 물품, 기술, 자금을 북한에 이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이것이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요.

<질문> 그 뒤에도 대북 제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요?

문성희: 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 것은 여러분들이 이미 아시는 사실인데, 이에 대한 제재, 그리고 2009년 4월에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실시한 뒤의 제재 등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한 제재가 지속돼 왔습니다. 유엔이 제재를 결의하는 목적은 북한에 핵과 미사일 실험을 단념 시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제재 속에서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단념하는 기세는 전혀 안 보였습니다.

<질문> 그런데 궁금한 건 북한에 계실 때 제재의 영향을 피부로 느끼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실제로 현지에서 느끼거나 직접 목격한 것도 있을 듯한데요.

문성희: “우리는 계속 제재를 받고 살아왔다,” 김일성주석이 과거 이런 내용의 말을 여러 번 해왔습니다. 북한 스스로가 제재 속에서 살아왔다고 느끼고 있다는 거겠지요. 그러기에 제재에 대한 면역력이 붙고 있다고 할까,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외부세계에서 느끼는 분위기이지요. 조선신보 평양지국 특파원 생활을 할 때인 2003년 여름 당시에는 아직 대북제재가 본격화하지 않는 상태라 영향이 있다는 것을 그리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 연구사업으로 북한을 자주 방문한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서는 약간씩 제재의 영향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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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 많이 늘어난 게 확연했던 평양 시내 모습. (2008년 8월)
사진-문성희

<질문> 구체적으로는 어떤 현상이 있었나요?

문성희: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휘발유 공급이 긴장하는 것이지요. 2008년 여름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마침 휘발유 가격이 막 올라간 때라 운전기사들이 큰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조금 좋아졌다고 생각하니 또 원유값이 올라 고생해야 하는 건가” 라고 한탄하는 운전기사의 말도 직접 들었습니다. 제가 당시 직접 접할 수 있는 운전 기사라면 주로 재일교포들의 발 역할을 하는 승용차 운전기사지요. 예를 들면 갑자기 예고없이 저녁 6시부터 승용차 운행을 금지한다, 이렇게 결정되거나 해서 손님들이 불편해 하고 하는 그런 측면이 있다는 걸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북한을 자주 오갈 때 일요일은 기본적으로 버스나 노면전차 이외는 승용차가 달리면 안 되는 날이었죠. 이 경우 간부들이 불편하다고 할까, 언제나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겠죠. 이것도 하나의 제재 영향이라고 봅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런 방식으로 소비를 강제로 줄이면서 제재에 대응해 온 거지요. 최근에는 일요일에 택시를 타는 주민들이 있다고 하니 이런 측면은 많이 개선됐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2017년 9월에 방북했던 사람에게서 들은 얘긴데, 당시 휘발유 가격이 15킬로그램 당 30달러였는데 북한에는 쿠폰, 즉 공급받을 때 쓰는 교환권이 있는데 이 것 한 장에 (휘발유) 15킬로그램을 살 수 있답니다. 이 교환권으로 휘발유를 구입할 수 있는 데 공급이 제한돼서 쿠폰 한 장 밖에 살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질문> 그러니까 휘발유 공급이 제한되고 있었다는 말씀이시네요.

문성희: 네 그렇지요.

<질문> 대북제재가 인민생활에 상당한 영향이 있다고 봐야겠군요.

문성희: 이것도 역시 원유, 전력과 관련되는 이야기인데 정전이 흔히 있다는 것이지요. 이건 잘 알려진 사일인데, 우리 같이 해외에서 오는 사람들이 숙박하는 호텔에서 정전이 일어나는 일은 2010년, 2011년에 이미 거의 없어졌지만 일반주민들의 주택 등에서는 정전이 일어날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여담인데 북한에서는 3개의 ‘ㄹ’을 해결하라는 말이 있어요. 쌀, 불, 물, 이 3가지 단어의 받침이 다 ‘ㄹ’이니까 나온 말이지요. 쌀은 먹는 문제. 불은 전기, 그리고 물, 이것도 북한이 해결해야할 큰 문제입니다. 홍수피해가 나지 않도록 그리고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상하수도망을 정비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질문> 생필품 부족 문제가 있지는 않았습니까?

문성희: 상품이 부족하다고 느낀 바는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1996년 고난의 행군시기 6월부터 9월까지 조선신보 특파원으로 북한에 체류했는데 이 때는 진짜 물건이 완전히 평양시내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맥주, 맥주가 먹고 싶어서 평양시내의 모든 상점을 돌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것은 일차적으로 제재 영향라기보다도 경제난 때문이었지요. 대북제재가 시행중이었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전반까지 별로 물건이 모자라다는 현상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시장같은데 가면 물건이 가득 차 있었고 값은 비싸지만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었지요. 결국 변강무역이나 보따리 장사로 북한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구나, 그런 걸 새삼스럽게 느꼈지요. 물론 중국 정부는 제재를 엄격히 실행하고 있겠지만 보따리 장사까지는 단속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느낌을 가졌어요.

<질문> 네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단속을 피해서 이런 밀무역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제재의 영향이 제한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떻습니까?

문성희: 그러니까 중국 정부도 우리는 제재를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중국 정부 차원에서는 제재를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밀무역이랄까 보이지 않는 데서 여러가지,…, 조선족이나 북한, 중국을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적게나마 물건을 가져와서 팔거나 그런 현상을 막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질문> 그렇다면 전기나 휘발유 문제 이외에 인민생활에는 그리 큰 영향이 없다는 설명도 가능하겠네요?

문성희: 반드시 그렇게만은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에 리용호 북한 외상은 기자회견을 열어 해제를 요구한 제재가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에 결의된 제재 중 민생부문의 제재 조치’라는 발언을 한 바가 있지요. 즉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은 민생부문 만이라도 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는 말인데, 이런 걸 보면 역시 민생부문에 영향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악기 수입이 멈추고 있다는 등의 영향은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질문> 악기를 외부에서 들여가지 못해서 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못 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네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외부에서 악기가 안 들어와서 수업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보도가 북한에서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제재가 그런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질문>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