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문으로으로 세상과 우주를 보다

 

  
임충재 작가가 인사동 갤러리 ‘나무사랑’에서 개인 작품전 <사람 · 문>을 열고 있다. 판화지 위에 붓을 사용하지 않고 스프레이를 이용하여 물감과 먹을 뿌려 만든 작품들이다. 동양화인가 서양화인가 구분도 명확하지도 않다. 동양화 채색 물감을 바탕에 흩뿌리고 ‘사람(people) · 문(gate)’의 모티브를 배치한 후 먹물을 스프레이에 담아서 뿌려 완성했다.
 

   

  
붓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이용하거나 온몸을 이용하여 표현한 작가들도 있지만 스프레이를 분사해서 작업하는 작가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매번 종이를 찢어서 만든 각각 다른 모티브를 순간순간 손길과 감각에 따라 배치하고 먹물을 뿌려 표현하고 있다. 신문지 같은 종이를 찢으면서 생기는 흰 여백이 화면을 뒤덮고 있는 작품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드러나는 형상들은 우연인 것이고, 예술가의 영혼이나 손길과는 한 발 물러서 있다.
 

   
이민재 미술평론가에 의하면 “종이를 뜯어낸 자리에는 물감이 닿지 않아서 흰색이 드러나는데 그 흰색은 화면의 여백 틈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 나무, 돌 형상을 둘러싸는 경계나 외부 공간이 되기도 하고, 사람 나무 돌은 검은색 바탕과 연결되고 흰색은 검은 배경 위에 들어선 문으로 드러나기도 하여, 이것일까, 저것일까, 음각일까 양각일까? 있음일까? 없음일까? 그는 이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구상 철판 작업을 <바깥 미술>에서도 선 보였다. 작은 종이에서 출발하여 세 동료를 철판으로 오려내기도 했고, 나뭇잎, 음각 토끼, 양각 토끼 등이 자연에 설치되었다”고 평을 한다.

미술평론가 김경서에 의하면 임충재 작가의 작품 활동은 다섯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고 한다.

“79년부터 83년 사이 <앙데팡당전> <다무> <의식의 정직성> 등의 소그룹 활동의 시기, 81년부터 85년 걸쳐 <겨울 대성리전>, 84년에서 90년 대로 이어지는 중등 교사로서 해직과 복직을 거듭하며 교육운동에 전념하던 시기, 97년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바깥 미술> 활동 시기, 마지막으로 다시 회화 작품으로 개인전을 준비하는 시기 등으로 구분 지어 볼 수 있다.”  
 

  
임충재 작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이라는 것이다. 1984년 어느 지인의 부탁으로 잠깐 교단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2017년 2월까지 교단에 그를 붙들어 놓았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불어닥친 민주화의 바람은 교단에서도 거세게 불었다.

5.10 교육민주화 선언, 전국교사협의회의 결성, 전교조 결성과 1500명이 넘는 교사들의 대량 해직, 그후 4년에 걸친 복직투쟁과 10여 년에 걸친 합법화 투쟁 끝에 전교조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합법화의 길을 열게 된다. 중대부고 교사로 재직하던 임충재 작가는 교사협의회와 전교조를 결성하는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임충재 작가는 전교조 초중고를 아우르는 관악·동작지역의 창립 지회장을 맡아서 노력했고, 전교조 본부의 전국사립위원장 등 전교조 조직의 주요 직책을 맡아서 활동했다. 이런 직책을 맡아 복직 투쟁과 합법화 투쟁에서 누구 못지않은 선도적 투쟁을 해 왔다.
 

   

  
임충재 작가는 참교육 운동을 해온 미술교사로서 늘 학생들 곁에 있었다. 학생들의 순수성과 다양성, 가능성, 가식이 없는 소박한 표현 활동 등이 그를 교사로서 계속 붙들어 두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를 하기도 했던 이민재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미술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생각과 고민, 삶을 미술 교육으로 품어 안아 우리로서 함께 끌어안고 가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사실을 묘사하는 미술에서 답답함을 느껴 수채화나 유화보다는 판화, 설치, 동양화 등 새로운 도구를 제시할 때 부채나 도장, 문패, 도자 등 실용성을 추구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 학생들은 과감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이런 아이들의 소박하고 거친 진심이 담긴 표현이 가슴에 다가왔다.”

2010년 장승중학교 축제에서는 2학년 학생 전체가 모둠별로 설치 작업을 하자고 제안하여 학생들은 밤늦도록 자신들의 이야기를 설치 미술로 표현하는 활동을 했다. 7, 8명이 한 모둠이 되어 60여 점의 설치 작품이 축제 당일 드러난 것이다. 그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겨울 대성리전>과 <바깥 미술전>, 대청중학교 학생들과 <양재천 설치 작업>, 장승중에서 <학교 축제 설치 작업> 등 교사 작가로서의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렇게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신문 조각을 찢으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람 · 문>에 담긴 것이다. 종이를 찢어내어 만든 문 안에는 사람들이 들어있는데,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그 문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한이 없는 것이다.

임충재 작가에게 “이 작품들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빙긋이 웃기만 한다. 참 유치한 질문을 했던 것이다. 임충재 작가는 문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들을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마음을 통해서 각자의 생각으로 살아나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 · 문> 개관식을 하는 날 ‘나무사랑’을 찾은 전교조 이부영 전 위원장한테 질문을 던졌다. “위원장님, 헤아릴 수 없이 흩뿌려져 있는 노란 점들이 2016년에 타올랐던 촛불들 같지 않으세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문과 사람들은 그 촛불들을 각자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한편으로는 밤하늘 우주 공간에 흩뿌려져 있는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의 이야기들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임충재 작가는 개인전을 이번에 처음 연다고 한다. <사람 · 문>은 10년 이상 작업 끝에 사람들 앞에 선을 보여 그의 작품 세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임충재 작가는 이제 교직에서도 물러났으니 여주에 있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더욱 작품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한다. <사람 · 문>은 10월 30일 개관하여 11월 5일까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