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록'으로 알려진 알카트래즈섬을 가다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의 신체가 구속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법을 어긴 범죄인에게 벌을 내리기 위하여 신체를 좁은 공간에 구속하는 감옥은 항상 존재해 왔다.

범죄의 사전적 의미는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하고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반사회적인 행위’다. 양심과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타인의 신체와 재산에 해를 입히는 경우가 일반적이나 때로는 사상이나 신념에 따른 국가 권력이나 정치질서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처벌되는 경우도 많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감옥이었던 서대문 형무소가 이러한 양심범을 수용했던 대표적인 감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서대문 형무소에도 일반 형사범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민주화 투쟁을 겪었던 우리에게는 독립투쟁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기록된 곳이다.
 

 
이에 반하여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2km 정도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있는 알카트래즈(Alcatraz)섬은 범죄가 흉악하여 일반인과 격리해야만 하는 살인범 등을 수용했던, 자연조건을 이용한 감옥이다. 

2019년 여름 세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알카트래즈섬을 방문하게 되었다. 첫 번째 시도는 2000년 늦은 봄 샌프란시스코에 관광 온 김에 당연히 가야겠다는 막연한 이유로 티켓을 구매하려다 좌절했고, 작년에는 일주일 전에 방문 계획을 세움으로써 섬에 올라가지는 못하고 섬 주위에서 설명만 듣는 일정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두 번의 실패를 참고삼아 올해는 마음먹고 4개월 전에 티켓을 예매하여 섬에 올라가게 되었으니 19년 만에 성공한 셈이다.

영화 “더 록”으로 더욱 유명해진 알카트래즈섬은 세계인들에게는 가장 악명높았던 감옥으로만 알려졌으나, 역사적 의미도 많은 섬이다.

섬에는 미국 서부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가 있고 남북전쟁 당시 샌프란시스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군사적 방어 기지와 포로수용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연방 교도소로의 역할을 마친 1963년에서 6년 후인 1969년에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19개월간 점령하여 저항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34년 미국 정부는 훈련용 막사로 사용되던 알카트래즈섬을 매입하여 끊임없이 말썽을 빚는 흉악범들을 수용하는 연방 교도소로 만들었다. 29년간 이곳을 거쳐 간 범죄인에는 알 카포네, 로버트 스트라우드 등 우리 귀에도 익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알카트래즈섬은 차갑고 험한 물살로 인하여 배를 타지 않고는 외부로 나갈 수 없고 외부에서 물과 음식을 반입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그 자체가 유배지였다. 그러나 섬 꼭대기에 있는 가장 큰  건물인 수형 시설과 그들이 일했던 공장을 제외하면 교도관들을 위한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고 그들이 다녔던 교회와 댄스홀도 있었다. 마을에는 교도관 가족들이 거주하며 아이들은 매일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알카트래즈 관광은 알카트래즈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영화로 시작한다. 섬에서는 오디오 투어를 제공하는데 한국어 투어도 있다. 헤드폰을 귀에 대고 안내에 따라 동선을 이어가다 보면 마치 라디오 극을 듣는 것 같다. 

서대문 형무소를 비롯한 많은 교도소가 원형 감옥인 판노티콘 형태인데 비하여 알카트래즈 시설은 일자로 길게 뻗은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방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같은 형태를 갖춘  A, B, C, D 네 개의 동이 평행을 이루고 있다. B와 C동은 일반 동이고 D동은 징벌방과 흑인 등을 분리 수용하는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A동은 특수 동이다.

알카트래즈 감옥의 모든 방은 D 동을 제외하고는 양팔을 뻗으면 손이 벽에 닿을 수 있는 1.5×2.7m 크기의 독방이다. 이곳의 악명 높은 수감자들은 습하고 찬 시멘트 바닥에 변기와 세면시설, 쇠로 된 의자 세트, 그리고 철제 침대만 있는 좁은 공간에서 멀리 샌프란시스코에서 들려오는 도시의 행복한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고독을 감내해야만 했다. 실제로 이곳에 있었던 수감자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점을 꼽으라 했을 때 그들의 대답은 외로움과 추위였다고 한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미국의  알카트래즈 연방 교도소와 일제 강점기와 군부 독재 시절 고문과 악행이 자행되었던 우리나라의 서대문 형무소 모두 지금은 수형 시설의 역할을 마친 상태다. 알카트래즈섬은 연평균 17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되었고 민족의 수난과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이 된 서대문 형무소는 연 7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역사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일반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시도 때도 없이 잔인한 말썽을 부리는 흉악범들의 수형 생활을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꿈꾸다 투옥된 투사들의 일상과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겪는 외로움과 고통은 큰 차이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신념과 의지도 없던 그들이 정신적으로는 더 비참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