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녀상이 주먹 쥔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작가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또다시 일을 냈다. 지난 9일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맹렬한 경멸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다가 올려놓은 지 고작 하루가 지나서다.

그는 신작을 기다리는 한국인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한 누리꾼의 부탁에 ‘신경 안 쓴다. 근데 보지 말라고 해도 볼 거잖아. 마지막일테고, 죽여줄거니까’라는 식으로 답했다(관련기사: ‘소녀상 모욕’ 에반게리온 작가 “한국인, 그래도 내 작품 볼 것”).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간을 달리는 소녀>, <천원 돌파 그렌라간> 등 만화를 좋아하는 20, 30대라면 들어라도 봤을 법한 작품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설정과 감수, 감독을 겸한 작품도 많았다. 

그러나 명성이 면죄부를 안겨주는 건 아니다. 유명하다고 해서 ‘똥’을 싸도 되는 시대가 아니니까. 적어도 한일 관계에서 절대로 삭제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선이고, 그는 그걸 제대로 건드렸다. 그는 비난이 거세지자 뒤늦게 ‘함께 일하는 한국인들과 잘 지내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많은 팬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소녀상이 곧 역사다
 
7월 초에는 네 명의 남자가 소녀상을 앞에 두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万歳, ‘천황 폐하 만세’라는 뜻)!”라는 구호를 외치고 소녀상을 향해 침도 뱉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준다면 선처를 해주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벌금을 내고 말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네 명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가장 끔찍했던 건 그 네 명 모두 소녀상이 어떠한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그들은 행위의 목적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물론 검찰에 송치되고 나자 네 명 모두 사과를 할 생각으로 의향을 틀었다고 한다. 그게 과연 진정성 있는 사과일까. 나눔의 집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사과를 받게 되지 않을까.
 
평화의 소녀상은 태어나면서부터 너무나 많은 사랑과 너무나 많은 모욕을 받아버렸다. 역사적 가치로서 인정받음과 동시에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도 했다. 어디선가는 새로 자리를 잡았고, 어디선가는 쫓겨났다. 목도리를 받았지만, 낙서가 새겨지기도 했다. 잊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침을 뱉고 가는 저런 사람들 또한 없지 않았다.

어차피 세워진다고 했던 그 순간부터 이런 상황은 예견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직까지 일본에는 민족 우월주의를 고수하는 인사들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일본 덕분에 근대화가 빨리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자신의 딸이 위안부에 끌려가서 강간을 당해도 일본을 용서해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 소녀상이 그렇게 좋으면 잠실운동장에 소녀상을 오만 개 앉혀놓고 케이팝 콘서트를 열자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비뚤어진 태도들은 결코 ‘올바를’ 수 없다.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위인들의 후손이 있고, 역사는 일제의 침탈을 기록하고 있으며, 강점기는 엄연히 존재했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님들께서도 현재 일제의 사과를 받기 위해 투쟁하는 중이다. 그래서 소녀상은 주먹을 쥐고 있다. 주먹의 의미를 모르고서 조롱한다면, 본인이 역사에는 관심따위 없는 몰상식한 사람이라는 반증이 되지 않을까.
 
요시유키는 소녀상을 보고 놀라움도, 즐거움도, 지적 자극성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소녀상은 놀라움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역사는 지겨워질 수 없는 사실의 나열이다. 지적 자극성이 아니라, 가슴 아팠던 과거가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워놓은 역사적 의의의 조형물이며, ‘예술’로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상기’해야 하는 기억의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