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의 베스트셀러 술이 남긴 것

소주라는 이름을 생각한다. 한글로 소주이고 영어로 ‘soju’다. ‘Soju’라는 단어는 2008년에 미국의 멜리암 웹스터 사전에, 2016년에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어 보통명사의 대열에 올랐다. 그전까지 소주는 ‘코리안 보드카’ 정도로 소개되는 고유명사였다. 어원 사전에서는 중국의 샤오저우(shāojiǔ, 烧酒), 일본의 쇼추(shōchū, 焼酎), 한국의 소주(soju, 燒酒)가 어원이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영사전 위키피디아에서는 소주는 한국에서 기원한 맑고 투명한 증류주이며, 전통적으로는 쌀과 밀과 보리로 만들었는데 현대에 와서는 감자와 고구마와 타피오카와 같은 전분질을 원료로 삼고 있다고 했다. 거칠지만 위의 정의는 안동소주 같은 전통 방식과 참이슬 같은 현대 방식을 두루 포함한 개념이다.

그런데 안동소주 병을 볼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안동 소주(燒酒)가 아니라 안동 소주(燒酎)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젊은 층을 겨냥하여 한글 홍보 문구를 쓰다보니 눈에 덜 띄지만 참이슬과 처음처럼도 소주(燒酎)라고 스스로를 지칭하고 있다. 소주(燒酎)가 일본식 조어인데도 말이다.
 

소주(燒酎)는 일본식 조어

한반도에 소주가 처음 들어온 것은 몽골침략기 때였다. 소주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 <고려사>에 나오는데 우왕 원년(1375년)에 “사람들이 검소할 줄 모르고 소주(燒酒)나 비단 또는 금이나 옥 그릇에 재산을 탕진하니 앞으로 일절 금한다”고 했다. 우왕 2년에는 경상도원사 김진의 무리가 임지에서 기생을 불러다놓고 주야로 술을 즐기는데 소주를 좋아하여 군중(軍中)에서 소주도(燒酒徒)라 불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진은 근무가 태만하여 왜구들과 싸워 패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소주(燒酒)가 127번이나 검색되지만, 소주(燒酎)는 전혀 검색되지 않는다. 조선 후기까지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소주는 모두 소주(燒酒)였다. 가장 많은 술이 소개된 조선시대 문헌 <임원경제지>를 보면, 술을 이류(酏類)에서 소로류(燒露類)까지 11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11가지 중에서 주류(酎類)가 두 번째로 등장하는데 여기에 속한 술이 호산춘방, 잡곡주방, 두강춘방, 무릉도원주방, 동파주방으로 거듭 발효한 진한 술들이지 소주는 아니었다. 소로류(燒露類) 속에 소주총방(燒酒總方), 모미소주방(麰米燒酒方), 감저소주방(甘藷燒酒方) 같은 다양한 소주(燒酒)가 등장한다.

일본식 조어인 소주(燒酎)가 한반도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것은 1909년에 일본인의 주도로 주세법이 만들어지면서다. 이때 주세법 제2조 제2류의 증류주 항목 안에 소주(燒酎)가 들어 있다. 주세법 초기에는 조선 소주와 일본 소주의 경계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식 소주가 주도적인 개념이 되고 말았다.

1910년대에는 전통 소줏고리 대신에 일본식 양조용 시루가 보급되었다. 1920년대에는 일본에서 검은 누룩(흑국)이 들어와 놀라운 속도로 보급되었다. 전통 누룩은 단단한 떡누룩이고, 흑국은 균을 배양한 가루누룩으로 그 형태와 색깔이 달랐다. 1923년에는 전통 누룩 소주와 흑국 소주의 비율이 99대 1이었는데, 1932년에는 5 대 95로 크게 역전되었다.

일본에서 개량된 흑국 소주 방식이 들어오고, 영국에서 개발된 연속식 증류 방식이 1919년 평양에 이어 인천, 부산에 들어오면서 전통 누룩을 사용한 조선 소주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흑국 소주나 연속식 소주보다 전통 누룩 소주가 제조 비용이 더 들고 효율이 떨어져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소주라는 이름 속에 떠도는 유령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1949년에 마련된 대한민국 주세법에 소주(燒酎)는 그대로 남았다. 남북이 갈리고 전쟁과 독재의 아수라 속에 일제를 청산할 겨를도, 한국 소주를 연구하고 발전시킬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에 술을 곡물로 빚지 못하게 하면서, 전통 증류식 소주가 사라지고 주정을 만들어 물로 희석한 소주가 유일자가 되었다. 희석식 소주에는 전통을 담을 수도 없으니, 정체성을 논할 수도 없었다.

1970~1980년대를 지나면서 권력의 지원과 자본의 집중 속에 주정에 물을 희석한 소주가 성장하여, 그중 하나인 진로는 세계 최대량의 증류주를 생산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1990년부터 쌀로 술을 빚게 허용하면서, 문배주, 이강주, 안동소주 같은 전통주들이 가까스로 부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활한 소주의 기억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어서, 일제 강점기의 관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름조차 소주(燒酎)라 부르는 곳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의 베스트셀러가 안동 제비원 소주였던 기억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주세법의 위세가 강했던 것일까? 그 결과, 희석식 소주는 기억할 전통도 없이, 전통 소주는 삐뚤어진 기억으로 현대사에 올라타 21세기까지 우리와 동행하고 있다.

다시 소주라는 이름을 생각한다. 소주(soju, 燒酒)는 쇼추(shōchū, 焼酎)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소주 제조법 속에 전통성이 얼마나 담겨 있고, 한국적인 것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느냐는 것이겠지만, 우선 소주라는 이름 속에 유령처럼 떠도는 일본 강점기의 흔적은 우리 스스로 거둬내야 하지 않겠는가?